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삶과 기대함을 안다.
그것은 순종이다.
100%의 순종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순종을 향한 발걸음을 원하시는것이 분명하다.
100%의 순종..
그것은 왠지 자기 교만을,
자기 자랑을 낳지 않을까 그런생각이 든다.
교만과 자랑을 낳지 않는 100%의 순종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쌍수들어 환영할 일이지만
과연 사람에게서 그런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갑자기 내 말에 오류가 있음을 인지한다.
100%의 순종이라면 교만이 나올리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는건
어쩌면 100%의 순종이 어렵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런생각이 든다.
순종을 어거지로 흉내내어 연기하며
그것을 자기 의로 삼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정말 순수한 맘에, 기쁜 맘에,
아무런 자기의 의를 세우는 목적이 아닌
그분의 말씀에 그저 순종하는것 그것은 정말
어려운일이 아닐까?
한때 순종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열심히 한적이 있다.
아니 그땐 몰랐는데 지금보면 그랬던거 같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과 영성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인정, 혹은 자기만족(교만)을 위해
말씀을 공부하고 대했었다.
좋은 메신저가 되어 사람들이 감동받는 모습
혹은 그런 리엑션들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여 말씀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파헤쳐보기도 했었다.
적어도 교회안에서 만큼은,
몇몇 공동체의 모임에서 만큼은
그럴듯한 사람으로, 깊이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그래서 어느정도의 인기를 만들고자 영적으로
비어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거 같다.
혹은 마치 바벨탑을 쌓아가듯
내 스스로 목표를 세워놓고 그 목표에 다다를수록
얻게되는 자기 만족을 위한,,. 수단,.,.
내가 생각하는,적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의 첫걸음은
십자가앞에서 나의 나됨을 직면하는 일이다.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한없이 깨지는 일이다.
그게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일이다.
세상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그 어떤 어떤 적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내 자신,
내 내면이 두렵다.
그 내면을 바로보며 찟어져야 하며
깨져야 하는 그 순종의 첫걸음이 두렵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가 커질수록 나에 대해 더 알면 알수록
죄가 점점더 완악해지는 것 같다.
세상이 악해졌다는 핑계를 댄다.
나도 사람인데.. 신이 아닌데 라는 자기 위한을 해본다.
하지만 내가 더 악해졌다. 그 악해진맛큼 그 만큼 더
교묘하게 세상과 짝을 짓는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악해진 세상을 탓한다..
첫번째 죄를 저질렀던 아담과 하와처럼.
두번째 순종의 발검음은 내가 죽는 일이다.
깨지는것도 두려운데.. 십자가에 나를 죽이는 일이다.
보는 사람들이 있을 때 내가 죽은듯 할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종교적인 의를 쌓는다.
정말 죽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죽음은 자살보다 더 어려운 일이 분명하다.
종교적인 열성도, 자기 만족도...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그런 마음도 ...
교묘한 방법으로 세상과 짝하며 그러면서
내 몸에 각인된 욕심과 욕정의 찌거기까지도
모두 못 박는 일이다.
순종의 세번째 발걸음은 더 논하고 싶지도 않다.
이 두걸음만 걸어갈 수 있어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싶다.
나의 두려움은 이 순종의 발걸음을 재촉하시는
그 분의 잔인한 음성이다.
더 잔인한건 그분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죄를 짓고 자기 수치심에 부끄러워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어있었던 첫 인류의 조상들에게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것처럼,,